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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17 본문

해외 정착기/2023 ~ 2025 캐나다 정착기

2025.3.17

CyberSoak 2025. 3. 17. 00:59

바람이 불어오는 길 위에서

나는 안다.
모든 것은 흐르고, 모든 것은 변하며,
어떤 것도 영원히 손에 쥘 수 없다는 것을.

바람은 지나가고,
길 위에 남았던 발자국은 지워진다.
손끝에 닿았던 온기도,
눈을 감고 새겼던 순간들도
결국에는 희미해진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착각한다.
내가 무언가를 붙잡을 수 있다고.
무엇을 이루었다고, 무엇을 깨달았다고.
길 위에서 내가 본 것들이
나를 완성시켜 줄 것이라고.

위니펙의 겨울은 깊고 고요했다.
그곳에서 나는 진실을 마주했다.
홀로 선다는 것, 홀로 걸어간다는 것,
그리고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것.
그곳에서 나는 삶을,
그리고 나 자신을 이해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한국의 공기는 다르다.
익숙한 것들이 다시 나를 감싸고,
시간은 또 나를 길들이려 한다.
나는 내가 품었던 것을 잊어간다.
조금씩, 아주 천천히,
마치 바람에 쓸려가는 모래처럼.

나는 안다.
깨달음은 영원하지 않으며,
길은 끝없이 흔들린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믿는다.
바람이 지나가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흔적이 지워져도 남아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나는 길 위에 선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가.

모든 것은 부질없다 해도,
나는 걸어갈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향해.